창세기 25장은 독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왜 하나님은 장자의 권리를 가진 에서가 아니라, 뒤에 태어난 야곱을 택하셨을까? 인간의 상식으로 보면 에서는 당연한 선택처럼 보인다. 그는 장자였고, 힘이 있었으며, 아버지 이삭이 사랑한 아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은 늘 인간의 기준을 조용히 넘어선다.

성경은 이 선택이 두 형제의 행위 이전에 이미 선언되었다고 말한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선택이 공로가 아닌 주권과 은혜에 근거함을 분명히 보여준다. 하나님은 인간 사회의 질서나 관습에 매이지 않으신다. 장자냐 차자냐, 강하냐 약하냐보다 더 중요한 기준이 있다.
그 기준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을 어떻게 대하느냐이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과 바꾸었다. 배가 고팠다는 이유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배고픔 자체가 아니라, 영적인 가치를 얼마나 가볍게 여겼느냐에 있다. 에서에게 장자의 명분은 당장의 욕구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이 담긴 축복을 현실의 허기보다 하찮게 여겼다.
반면 야곱은 부족하고 계산적이며 때로는 비열해 보인다. 그의 방법은 결코 본받을 만하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사모했다는 것이다. 야곱은 장자의 명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고, 그것을 붙들고자 했다. 하나님은 야곱의 속임수를 칭찬하신 것이 아니라, 약속을 향한 그의 집요한 갈망을 사용하셨다.

이 선택은 “야곱은 선해서, 에서는 악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둘 다 연약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을 통해 일하시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붙들 수 있는 사람을 통해 역사하신다. 이것이 은혜의 논리다.
창세기 25장은 오늘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더 소중히 여기며 살고 있는가? 당장의 팥죽 같은 현실의 만족인가, 아니면 보이지 않지만 영원한 하나님의 약속인가? 하나님의 선택은 불공평해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다. 하나님은 혈통이나 조건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을 보신다.
● 결국 하나님이 야곱을 택하신 이유는 한 가지로 모아진다. 그는 약속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약속은 오늘도 여전히, 선택받은 소수에게가 아니라 붙드는 자에게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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