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해전은 1598년 12월 16일(선조 31년 음력 11월 19일) 경상남도 남해현 노량해협에서 조선과 일본이 벌인 해전이다. 임진왜란의 마지막 해전이자, 이순신의 생애 최대 최후의 해전이다.
전투 배경
1598년 9월, 임진왜란의 주역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했다. 이에 따라 일본은 임진왜란의 종전을 결정하고, 조선에 철수하기로 했다.
그러나, 순천 왜성에 주둔하던 고니시 유키나가는 퇴각을 거부하고, 조선 수군을 격파하여 명예를 회복하고자 했다.
전투 과정
일본 수군은 노량해협에 450여 척의 전함을 집결시켰다. 이들은 조선 수군을 격파하고,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노량해협을 통과하기로 했다.
이에 맞서 조선 수군은 이순신과 진린을 총사령관으로 하여 133척의 배로 맞서 싸웠다.
전투는 16일과 17일 이틀에 걸쳐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결국 조선 수군은 일본 수군을 대파하고, 450여 척의 배 가운데 330여 척을 격침시켰다.
전투 결과
노량해전은 임진왜란의 마지막 해전이자, 이순신의 생애 최대 최후의 해전이었다. 이순신은 이 전투에서 전사하였으나, 그의 승리로 인해 임진왜란은 종전되었고, 조선은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낼 수 있었다.
노량해전의 의의
■ 노량해전은 다음과 같은 의의를 가진다.
• 임진왜란의 종전을 확정지은 전투이다.
• 이순신의 탁월한 리더십과 전술이 승리를 가져왔다는 것을 보여준 전투이다.
• 임진왜란의 3대 대첩 중 하나로 꼽히며, 조선의 국난 극복 정신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다.
노량해전은 조선의 국난 극복 정신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으로, 오늘날까지도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큰 자부심과 희망을 주는 전투이다.
이순신의 전사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은 전사하였다. 그는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쓴 <난중일기>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오늘은 싸움터에 나가서, 적과 싸우다가 이기거나 죽으리라. 만약에 이기지 못하고 죽게 되면, 내 머리를 가져다가 성웅의 묘 앞에 묻어달라."
이순신의 전사는 조선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그의 승리로 인해 임진왜란은 종전되었고, 조선은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낼 수 있었다.
● 이순신은 조선 역사상 최고의 영웅으로, 오늘날까지도 대한민국 국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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