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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인지

홈플러스 채권을 산 사람들의 최후

by NICE CHANGE 2025.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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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 채권을 산 사람들의 최후


“예금보다 조금 낫다던 그 말이 시작이었다”

김성호(가명) 씨는 50대 중반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30년 가까이 일하며 모은 퇴직금 일부를 어디에 둘지 고민하던 그는, 은행 창구에서 한 상품을 추천받았다. “홈플러스 회사채입니다. 대기업이고, 이자도 예금보다 높아요.” 주식은 무섭고, 부동산은 이미 늦었다고 느끼던 김 씨에게 그 말은 충분히 설득력 있었다. 그는 그렇게 홈플러스 채권을 샀다.

당시 김 씨의 머릿속에 홈플러스는 ‘망할 수 없는 회사’였다. 전국에 깔린 매장, 익숙한 로고, 주말마다 북적이던 주차장. 이런 기업이 원금을 못 돌려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채권은 안전자산이라는 오래된 믿음도 그 판단을 도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불안은 조금씩 스며들었다. 뉴스에서는 홈플러스 점포 매각 소식이 잦아졌고, “사모펀드 인수 이후 재무 부담이 커졌다”는 분석이 따라붙었다. 김 씨는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점포 몇 개 정리하는 거겠지.” 그러나 이자는 받는데 마음은 점점 불편해졌다.


결정적인 순간은 만기 연장 이야기가 나왔을 때였다. 채권 상환과 관련해 ‘구조조정’, ‘재무 재편’ 같은 단어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김 씨는 그제야 채권 설명서를 다시 펼쳐 들었다. 그 안에는 그동안 제대로 보지 않았던 문장이 있었다. 후순위, 무담보. 기업이 흔들릴 경우, 자신이 가장 마지막에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제야 선명해졌다.

홈플러스의 상황은 김 씨 개인의 선택과 무관하게 악화되고 있었다. 오프라인 대형마트의 쇠퇴, 온라인 경쟁력 부족, 그리고 MBK 인수 이후 누적된 부채 구조. 점포를 팔아 현금을 만들었지만, 대신 임대료라는 고정비가 기업을 짓눌렀다. 이 구조 위에서 발행된 채권은, 겉보기와 달리 매우 취약한 약속이었다.

만약 회생 절차나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현실화된다면, 채권 투자자의 운명은 냉정한 순서표에 따라 결정된다. 담보 채권자, 금융기관, 선순위 채권자 다음이 바로 김 씨 같은 개인 투자자다. 원금을 전부 돌려받지 못하거나, 수년간 자금이 묶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채권이 ‘이자 받는 상품’에서 ‘회수 가능성을 기다리는 권리’로 바뀌는 순간이다.


김 씨는 말한다. “누가 위험하다고 제대로 말해줬다면 안 샀을 거예요. 그냥 예금보다 조금 나은 상품인 줄 알았죠.” 그의 말에는 후회보다 허탈함이 묻어 있다. 홈플러스 채권을 산 사람들의 공통된 감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의 최후는 아직 진행 중이다. 누군가는 이자를 받으며 불안을 견디고 있고, 누군가는 손실을 각오하고 중途 매도를 고민한다. 다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남았다. 채권은 회사 이름이 아니라, 회사가 버틸 수 있는 구조를 보고 사야 한다는 것이다.

홈플러스라는 익숙한 간판은 많은 사람들에게 안전함을 약속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간판 뒤에서 기업의 체력은 이미 빠져가고 있었다. 김 씨가 산 것은 채권이 아니라, 그 체력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믿음의 값이 천천히 청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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