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단채란 무엇인가?

홈플러스 사태로 드러난 ‘가장 짧고 위험한 약속’
금융시장에서 ‘전단채’라는 단어는 낯설지만, 최근 홈플러스 사태를 거치며 갑자기 수면 위로 떠올랐다. 많은 개인 투자자들은 뒤늦게 깨달았다. 자신이 샀던 상품이 회사채도, 예금도 아닌 **전단채(전자단기사채)**였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짧은 만기의 종이는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약속이었다.
전단채는 말 그대로 아주 짧은 기간 동안 발행되는 채권이다. 만기는 보통 3개월 이내, 길어도 1년을 넘지 않는다. 기업이 급하게 운영자금이 필요할 때 발행한다. 월급, 납품 대금, 임대료 같은 당장 나갈 돈을 메우기 위한 ‘숨 고르기용 자금’이다. 문제는 이 숨 고르기가 반복될수록, 기업의 호흡은 점점 가빠진다는 점이다.

형식만 보면 전단채는 꽤 그럴듯하다. 종이 대신 전자로 발행되고, 증권사를 통해 유통되며, 이자도 예금보다 높다. 그래서 흔히 “단기라서 안전하다”는 설명이 붙는다. 하지만 이 말에는 중요한 전제가 빠져 있다. 기업이 계속 굴러간다는 전제다. 만기가 짧다는 건, 그 짧은 기간 안에 회사에 문제가 생기면 그대로 멈춰 선다는 뜻이기도 하다.
홈플러스 사태는 이 전단채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홈플러스는 오프라인 유통 침체, 사모펀드 인수 이후 누적된 부채, 점포 매각과 임대 구조로 인한 고정비 부담 속에서 현금 흐름이 빠듯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 선택하는 수단 중 하나가 바로 전단채 발행이다. 빠르게 돈을 조달할 수 있고, 만기가 짧아 부담이 덜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단채는 돌려막기 구조와 맞닿아 있다. 기존 전단채 만기가 돌아오면, 새로운 전단채를 발행해 상환하는 방식이 반복된다. 기업의 영업으로 현금이 충분히 들어오지 않는 상태라면, 이 구조는 언젠가 끊어진다. 그 순간, 전단채 투자자는 가장 먼저 위험에 노출된다. 담보도 없고, 후순위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홈플러스 전단채를 매수한 일부 개인 투자자들은 “대기업 유통사라 설마”라는 생각으로 접근했다. 하지만 전단채는 회사 이름보다 현금 흐름의 순간 상태가 더 중요하다. 회사채는 장기적 체력을 보고 투자한다면, 전단채는 ‘지금 당장 버틸 수 있느냐’를 묻는 상품이다. 홈플러스처럼 구조적으로 현금이 빠져나가는 기업에게 전단채는 응급처치일 뿐, 치료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설명 방식이다. 전단채는 종종 회사채나 단기 금융상품과 비슷하게 소개된다. 그러나 법적으로도, 구조적으로도 전단채는 훨씬 위험하다. 기업이 회생 절차에 들어가거나 자금 경색이 오면, 전단채는 상환이 지연되거나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짧다’는 장점이 순식간에 ‘도망갈 틈이 없다’는 단점으로 바뀐다.

홈플러스 사태는 우리에게 분명한 교훈을 남긴다. 전단채는 안전자산이 아니다. 오히려 기업이 돈이 급하다는 신호일 수 있다. 만기가 짧다고 안심할 것이 아니라, 왜 이 기업이 지금 이 돈을 필요로 하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전단채는 가장 짧은 약속이지만, 그 약속이 깨질 때 투자자가 받는 충격은 결코 짧지 않다. 홈플러스의 이름을 보고 샀던 많은 사람들은 이제 알게 됐다. 금융상품에서 진짜 위험은, 복잡함이 아니라 익숙함 속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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